호세아 1장 1절에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왕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라며 호세아의 활동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은 여로보암 2세였고, 그 당시 상황을 열왕기하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십 오년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사십 일년을 위에 있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4:23~24).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한 기간은 41년이었고, 북이스라엘 왕 중 가장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기간은 무척 짧았는데, 이스라엘의 왕권에 반발하여 세운 북이스라엘이었으므로 끊임없는 정변 탓에 왕권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왕이 그런 시대에 41년을 통치했다는 것은 굳건한 왕권을 기반 삼아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다는 말입니다.
열왕기하에 여로보암왕의 업적이 계속 나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왕하14:25). 여로보암왕이 솔로몬 시대의 지경까지 영토를 회복했다는 구절입니다. 즉 여로보암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아주 능력 있는 왕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열왕기하는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왕하14:26~27)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고 지켜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왕은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는데도 성경은 여로보암 2세에 대해 간단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치·경제적 안정과 이로 말미암은 번영에 취해 있던 북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부유를 누리던 나라들이 영적으로 타락해 가는 모습을 오늘날에도 여러 선진국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난하던 시절의 성도들 신앙과 물질의 부유를 누리는 오늘날의 성도들 신앙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통치 말기에 북이스라엘은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번영했지만 영적으로는 심각하게 부패한 시대였습니다. 호세아가 남유다에 정통성을 두고 동경한 까닭도 북이스라엘에는 희망이 없었지만, 남유다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망한 후 호세아가 남유다에 와서 선지자로 활동했다고 하지만 기록에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장항진 목사(동탄연세중앙교회 담당)
위 글은 교회신문 <78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