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호1:8~9).
고멜이 둘째 딸 로루하마에 이어 셋째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첫째 아들 ‘이스르엘’이 멸망을 경고하신 수준이었다면, 더는 긍휼이 없다는 ‘로루하마’에 이어 이제는 ‘로암미’, 즉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로암미’라는 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이가 완전히 끝났다. 모든 계약은 백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라는 단서 조건을 이스라엘이 이행하지 않았기에 계약이 파기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연을 끊겠다는 말입니다.
호세아서를 읽다 보면 하나님의 분노를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타이르고 타이르다 도저히 돌이키지 않자 분노를 내보이십니다. 부모가 철없는 자녀에게 “너 당장 집에서 나가,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라는 말까지 하며 책망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분노를 참을 수 없으니까, 아무리 훈계를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까 강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호세아 전반의 하나님의 분노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그 기복도 심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긍휼도 없다고 강하게 말씀하시다가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에게는 긍휼을 베풀 것”이라면서 구원의 여지를 남겨 놓으십니다. 10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더는 긍휼이 없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곧바로 “너희를 다시 회복시켜 주겠다”라는 여지를 주십니다.
무섭게 책망하시다가 이내 풀어 주시다 보니 호세아서를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분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사랑, 분노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계속 벗어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강한 책망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헤아리는 철든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맺어진 사랑이 날로 더 깊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장항진 목사(동탄연세중앙교회 담당)
*유튜브 채널 ‘소금창고’에서 방송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7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