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호세아 2장 14절에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려가 말로 위로하신다고 했습니다. 말로 위로한다는 것은 ‘마음에 말을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을 하더라도 그 마음과 심정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로 위로할 때 어떤 일이 생길까요? 바로 회개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리고 가서 “너희의 원래 모습을 잘 기억해 봐라. 너희는 애굽의 노예였다. 그런 너희를 누가 구원해 주었느냐? 40년 동안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누가 인도해 주었느냐?”라며 위로할 때 ‘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았구나’ 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너는 죄 아래 살다가 그 죗값으로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신세 아니었느냐? 그런 너를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 사함받게 했고 지옥에서 널 건져 주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 회개가 일어납니다. 말로 위로한다는 것은 회개를 이끌어 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한다”(사57:15) 말씀처럼 하나님의 위로는 영혼을 살립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31:33).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겔11:19). 이 말씀들을 보면 회개하기에 앞서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회개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설득하고 달래면서 말씀을 우리 심령 가운데 넣어 주십니다. 그 말씀 때문에 회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가 잘 되지 않을 때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이유도 위와 같은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에 하나님의 징계, 심판, 회복이 반복되는 것처럼 이사야서에서도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과 주변국을 향한 심판의 경고가 이어지다가 40장을 시작하자마자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라는 회복의 말씀으로 반전됩니다. 또 40장 3절에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광야’를 언급합니다. 호세아서와 맥락이 무척 유사합니다.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침례 요한입니다(막1:2~5). 이스라엘에게 심판 다음에 오는 진정한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지는 영혼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도 이스라엘 회복이요, 오늘날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를 세운 것도 회복이지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지는 인류 구원입니다. 호세아나 이사야가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광야를 언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항진 목사(동탄연세중앙교회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