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든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했다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자기 영혼을 내던져 가면서까지 타락한 물질문명에 매달려 그것으로 기뻐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0~11)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참된 기쁨은 영적으로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밥 잘 먹고, 옷 잘 입고, 좋은 집에서 많은 문화 혜택을 누리며 사는 것이 잘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누구든 죽은 인생입니다. 예수로 죗값인 사망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올바른 감정 ‘감사’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나를 살리는지 죽이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내 육신을 위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영원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안다면 올바른 선택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내가 살아야겠다’는 감정이 생겨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피 흘리며 죽임을 당하고 또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해 준 그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합니까? 올바른 감정을 가진 자라면 내 가족과 이웃이 이 사실을 몰라서 지옥 가는 것을 절대로 방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 안에서 인격이 올바르게 발동하면, 자기 가족과 지인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살리기를 원하게 됩니다.
주님은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를 비웃고, 제자들을 비웃고, 예수를 비웃었습니다. 왜 그들은 자기 죽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을 비웃었을까요? 주님이 주신 인격이 아닌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욕하는 자를 위해 울 줄 아는 인격, 몰라서 핍박하는 자를 긍휼히 여길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인격인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에게 전해 주어 그들의 죽은 인격, 마비된 인격을 예수의 생명으로 계속 살려 냅니다. 주님과의 사이를 바로 맺게 하여 감사할 줄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바른 인격을 가지고 기뻐할 것에 기뻐하고, 슬퍼할 것에 슬퍼하며, 오직 말씀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 찢기고 피 흘리신 주님, 우리가 그 주님으로 영생을 얻었다면 우리의 인격을 통해 주님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영원히 죽을 내 영혼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서 영생을 얻었다면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께 어떤 감정을 나타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 앞에 올바른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42호> 기사입니다.